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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수기] 주택코디네이터 활동사례_ 아름다운가게와 태화해뜨는샘이 함께하는 주거복지사업

작성자 : 작성자태화해뜨는샘    작성일 :2021-07-27 15:07:17   작성 IP : 106.241.23X.X    조회수 : 100

 

아름다운가게와 태화해뜨는샘이 함께하는 “독립주거 정신장애인의 안정적인 거주 환경 조성을 위한

정신장애인 주거서비스 지원사업” 참여자 수기


주택코디네이터 양성교육 과정 수기

이재옥 코디네이터

안녕하세요. 저는 발병 20년차 올해57세 정신장애인 여성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옥입니다. 저는 경북 경주 정신건강보건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 하였었고 그곳에서 사례관리 및 프로그램, 자조 모임 등을 이용하였지만 병의 호전이나 일상생활 능력이 향상되지 않고 오히려 더 퇴화되고 고립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꾸준히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참여를 하였었지만 그곳에서는 진정성 있게 저의 삶에 관심을 갖고 소통하고자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 전 언제나 목말랐습니다.

그러다 2019년 8월 무슨 내용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경상북도 도청에서 개최하는 “정신건강 회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심포지엄에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에 대한 소개를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정신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이란 점, 저는 너무 기뻤고 설레었습니다. 저도 동료지원가가 되어서 정신장애 당사자의 회복을 돕고, 급여를 통장으로 받으면 나의 회복도 급성장할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20년 6월경 경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동료상담가 교육과정이라는 총80시간의 과정을 이수하고 정신장애인 지원주택과 자립생활주택등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만큼 나의 삶을 이해해주고 관심을 가지고 나의 회복을 도와주는 둉료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동료지원가가 정신질환 당사자를 상담 할 때 2인1조로 사회복지사와 함께 근무를 하면서부터 발생하였습니다. 동료 상담가는 그저 사회복지사를 따라다니는 구경꾼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했던 정신장애 당사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은 없었습니다. 지적당하고 지시 받는게 일상이었습니다. 자존감은 땅에 처박혔고 스트레스로 재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저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태화해뜨는샘에서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주택코디네이터 교육이라는 것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저는 주저하지 않고 신청을 하고 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총11회기과정을 수강하였고 강의 내용중 1회기~5회기는 동료지원가 개론으로 회복의 의미ㆍ회복전략ㆍ스트레스관리ㆍ회복동기부여 등으로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6회기~11회기는 사례를 모델로한 토론식의 강의였습니다. 덕분에 흡수가 빨랐고 이해도 빨랐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강의였습니다.

11회기 강의를 다 수강하고 수료식을 마친 후 주택코디네이터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제만 만난 회원 모두는 정신건강복지센터ㆍ낮병동ㆍ자조모임등 각종 정신건강서비스를 오랫동안 받아 오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분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일상생활이 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저 감정이 무디어져 세상사는 의미나 행복을 느끼지도 못한 채 무기력과 “몰라요”로 일관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독립정신장애인 분들에게 주택코디네이터로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자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매주 만날 때 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회원들을 보면서 이 사업이 정말 필요한 사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양실조에 빠진 회원과 함께 장을 보고 신체활동을 유도하고 간단한 식단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필요한 재료를 함께 구입하고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가사관리사 선생님이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것... 이런 일들을 통해 영양실조에 빠진 회원이 끼니를 거르지도 않게 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신과 약도 잘 복용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목소리에서부터 활기가 느껴지고 지하철 2코스도 걸어다니게 되는 변화를 보았습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이사업이 잘해서입니다. 이사업이 필요해서입니다. 주택코디네이터 양성교육과정은 계속될 필요가 있습니다.


주택코디네이터 활동 수기

이재옥 코디네이터

1회기 첫 만남

유선 통화 시 12시 이전은 그녀가 기상하지 못하여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와의 첫 통화는 12시에서 1시 사이에서야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무엇인가 짧은 질문을 해도 대답이 오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는 했습니다. 대답조차도 아주 개미같이 작고 기력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으며, 간단한 질문임에도 몇몇 질문에만 답변을 했습니다. 대게는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예.” “네.” 라고 대답하는 단답식의 대답을 듣던 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녀와의 첫 만남이 기억납니다. 벨을 누르자 그녀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잠옷을 입고 머리를 감지 못해 떡이 진채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눈이 퉁퉁 부어 있고 무기력한 표정이었으며 현관까지 불과 2미터 거리를 걸어 나오는데도 휘청거리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계속 누워있던 중에 나오는 그녀를 보며 저는 이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상태를 보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무표정한 표정에 방문을 좋아하는 것인지조차도 알 수도 없어 부담이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안부를 물었을 때도 그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허공을 바라보며 저의 말에 대답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약복용 기간 등 간단한 질문에도 6회기까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며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밥은 잘 챙겨 드세요? 라는 질문에도 한 끼만 먹고 있다고 하더군요. 왜 한 끼밖에 먹지 않는지 묻자 그 이유에 대해서도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 기능도 신체도 쇠약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수급자로 쌀이 두포반 정도 있기에 저는 그녀에게 그 쌀로 밥을 해 먹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을 알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생각에만 머물 뿐 실제 밥을 지어 먹을 수는 없다 했습니다. 저는 제가 겪었던 무기력감을 떠올리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그랬었지...” 그래서 그녀에게 함께 장을 보면 밥을 해먹을 수 있을지 묻자 이전에 그런 적이 있었으나 결국은 밥을 해먹지 않아 버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식사를 하는지 묻자 외래방문을 하지 않아 약이 떨어지면 증상이 심하기 때문에 외래방문은 기간에 맞춰 가는데 이때 가는 길에 인스턴트 짜장과 햇반을 많이 사서 다음 외래 전까지 먹고 그 짜장이 떨어지고 나면 초고추장에 햇반을 비벼 먹거나 혹은 맨밥을 그냥 먹는 식으로 식사를 해결해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달 음식을 이용한 적은 없냐고 물었고 메뉴를 정하고 배달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거는 것, 모든 게 어려운 과정이어서 배달음식조차 시켜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1회 만날 때마다 산책 겸 마트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 음식을 조리하려면 무슨 식자재가 필요할지 함께 결정하고 구입하여 들고 오면 어떻겠냐고 그녀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녀와 함께 재료를 준비하면 가사 관리사가 협업하여 방문 시 간단한 반찬 두 개와 밥 정도를 조리하고 식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트에서 식자재를 사며 그녀에게 내일 가사관리사가 오니 음식조리를 요청하라고 말했으나 그녀는 내일이 되면 기억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이 어렵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와 함께 식자재를 구입했고 그녀의 냉장고에 가사관리사에게 전하는 메모를 붙여 두었습니다. 장을 보면서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었지만 그녀는 오랜 시간 인스턴드 식품인 짜장 만을 먹었기에 반찬의 종류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몇 분이 지나서야 부드러운 것을 먹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게 뭐가 있을까요? 라고 질문하며 계란말이, 계란찜, 두부, 감자와 양파를 사서 채 볶음이나 조림 등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그녀가 이를 듣던 중에 두부찌개를 먹은 지 오래되었고 이전에 좋아하던 음식이서 먹고 싶다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두부 이외의 재료가 무엇이 필요할지는 전혀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부찌개를 하려면 마늘, 고춧가루, 파, 양파, 마늘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그녀와 재료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재료 외에 양파 계란 등이 있으면 가사관리사가 다른 반찬도 해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그것도 함께 구입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팔이 아파 동사무소에서 sos 가사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팔이 아파 머리도 감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로 팔이 낫지 않아 병원을 세 군데나 옮겨 다니기만 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2회기에는 그녀와 외과 병원에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습니다.

2회기

송파구 오금동에 있는 병원에서 그녀를 만나 진료에 함께 들어갔습니다. 외과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여 일반 관절염 등은 아니고 ‘회전근개파열’일 가능성이 높으나 병명이 확정되어야 맞춤 치료계획이 가능하며 이럴 경우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치료계획을 세우려면 MRI 촬영이 필수임으로 권유하였으나 그녀가 대답이 없어 검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소염진통제를 처방 받아야 하다고 말했으나 그녀가 정신과 약 처방 시 진통제 4알을 포함했다고 말을 해서 결국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정신과에서 진통제를 처방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되어 회원 동의하에 스피커폰으로 회원이 다니는 정신과 병원에 문의 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는 그녀에게 처방한 약을 전화로 불러주었고 이 통화를 통해 소염진통제는 약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MRI를 찍어야 치료 방향을 잡을 수 있었지만, 회원이 치료비용 45만원을 부담스러워하여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소염진통제를 다시 처방받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기 전 그녀가 카레가 먹고 싶다고 하여 함께 마트에 들려 카레에 필요한 재로를 구입하였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녀와 식단을 정하고 함께 장을 보고 밥을 먹은 지 6회기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6회기 때 일입니다. 메뉴를 함께 정하고 장을 봤는데 간장을 빠트린 것을 그녀가 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필요한 재로가 무엇인지 조차, 무엇을 먹고 싶은지 조차 몰랐던 그녀가 6회기 만에 먹고 싶은 것을 말하고 필요한 재료 중에 빠진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스스로 사오겠다고 말한 뒤 혼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이후 가사관리사를 통해 전해 듣기로 지난번에는 시금치 된장국을 먹고 싶다고 말하며 회원이 직접 시금치를 사다가 다듬어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가사 관리사에게 반찬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 반찬을 만들어 해먹어야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제게 말했습니다. “집에서 나는 밥 냄새, 조리한 반찬과 먹는 밥맛이 얼마나 좋은지 이제 안다며 저에게 고맙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얼굴에는 전에 없던 생기가 분명 있었습니다. 다음 방문은 MRI검사비 지원 요청을 위해 주민 센터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3회기

의사 소견서를 받아든 그녀와 저는 주민센터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복지담당 창구에서 그녀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고 MRI 촬영 비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필요할 경우 어깨 수술비도 긴급지원이 가능한지 금전적인 문제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사회복지팀에서 그녀의 상황을 듣고 검사비와 수술비를 지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주민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손에 든 가벼운 라면봉투가 저희 둘에게는 꽤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날 이후 저는 제가 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날 숨 쉬는 소리만 들릴 뿐 아무 반응이 없던 그녀가 변화하는 것을 보며 내가 무엇인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돌아오는 길에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야호 소리가 나왔습니다. 코디네이터활동을 통해 그녀의 변화를 보며 제 스스로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재발에 대한 걱정이 들고는 했는데 이날 그녀와의 활동이 저에게도 회복의 계기가 된다고 느꼈습니다. 코디네이터 활동은 1주일에 한번이지만 돌아와서 그녀에게 뭔가 필요한 것을 해줄 생각에 항상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녀를 만나기전이면 더 좋은 병원예약을 알아보거나 어깨수술을 할 경우 입원 절차는 어떤지를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다음 만남에 그녀는 MRI를 찍었고 담당주치의 선생님은 그녀가 회전근개파열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2주 동안 일상생활 해보고도 통증이 지속되면 수술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제게 겁이 난다고 했습니다. 수술을 결정하지 못하던 그녀는 입원하지 않기를 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저 또한 크리스찬이기에 그녀의 기도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지만 수술이 그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고민해보자고 말을 건냈습니다. 이날 그녀가 검사와 식사를 끝내고 돌아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지금까지 한 끼 정도 먹으며 배고픔에 시달렸고 증상이 심할 때는 TV 소음조차 고통스러워 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TV가 보고 싶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TV 사는 것을 도와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 요청에 기쁜 마음이 들었던 건 그녀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저에게 한 첫 요청이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증상이 심할 때는 TV를 보지 않았기에 TV를 보려는 것이 얼마나 기쁜 변화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와 저는 온라인으로 TV 가격을 함께 알아봤습니다. 42인치를 찾자 가격이 비싸 32인치로 정하고 브랜드별로 가격도 비교해봤습니다. 그날 그녀의 집문을 나서는데 다음에 보자며 배웅해 주는 그녀의 표정과 자세가 첫날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4회기

지난번에 찾아본 32인치 TV를 보러 그녀와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실물을 보고 가격을 비교하려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나와 같이 TV를 보러 간다는 것에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그녀와 나는 지하철 한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함께 전자제품 매장을 봤고 그날 총 6700보나 걸었는데 피곤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바로 장을 보러 갈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다른 날 그녀는 항상 나와 함께 장을 보는데 이날은 혼자서 마트 이곳저곳을 다니며 방울토마토와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약물부작용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토마토를 직접 씻었습니다. 저에게 집에 온 손님이니 대접해주고 싶었다며 토마토를 권하고 두 개 산 아이스크림 하나를 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녀와 토마토를 먹으면서 저는 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몸에 얼마나 좋은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이때까지도 그녀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이날 TV를 사러갔을 때도 그녀가 어찌나 멀찍이서 TV를 보는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이 제가 TV를 사러 온 것 같은 모양새였습니다. 새 TV는 그녀에게 너무 비싸 구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녀와 중고 상회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 해결 방법은 사실 그녀가 먼저 이야기 한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방법을 제안한 것이 처음이라 저는 그 사실이 너무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날도 그녀는 제게 증상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습니다.

5회기

중고매장이 마천역 주변에 있어 그녀와 나는 마천역에서 만나 매장에 방문했습니다. 중고 TV는 16만원이었는데 새것과 2만원 차이였습니다. 이 TV가 6년쯤 되었기에 4-5년 뒤면 고장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중고구입을 했을 때는 오래 쓰지 못할 것이고 더 경제적인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에게 결정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오늘은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날도 다른 날처럼 마트를 가서 함께 장을 보던 중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기회가 충분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물어보았을 때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싶은 날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이날까지 저는 그녀에게 필요한 곳을 함께 다니는 식으로 그녀와 만났습니다.

6회기

이 무렵 그녀는 스스로 잘 먹는 것의 중요성을 아리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저를 보며 그녀 또한 직업을 가지지는 않더라도 회복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 들어보았는데 스스로 산책하고 나가서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사먹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것이 하고 싶은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녀는 발병 이전에 교회에서 간사로 사람들을 섬겼다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고, 7-8년 전 병으로 인해 활동을 하지 못하기 전 만해도 하던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회복된다면 교회사역자가 되고 싶다 말했습니다. 그녀는 경험을 살려 사회에 봉사 할 수 있겠다고 했고 스스로 미래를 생각하며 기대에 찬 표정도 보여줬습니다. 저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음에 만나게 될 다른 이들과도 단지 맨밥으로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잘 먹고 잘 자는 것과 같은 작은 일상을 함께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달 정도 먹고 싶은 것을 정하고 재료를 사다가 잘 먹다보니 그녀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제 밖으로 나가서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것입니다. 저는 그녀가 설정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눈에게 이전과는 다른 힘 있는 생기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음 목표를 세워나가게 된 데에는 가사관리사분의 도움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 분은 제가 그녀에게 다하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 했습니다. 냉장고에 쪽지를 붙여 주고받으며 우리는 그녀를 위해 함께 일했습니다. 조금만 더 자주 그 분이 오시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7회기

이날 만나서 보니 약을 바꾼 이후 그녀의 손이 부쩍 떨렸습니다. 저는 이런 부작용을 주치의에게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음 정신과 외래 날에는 함께 방문하자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변비약을 8알씩 먹고 있었는데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제가 같이 가서 주치의에게 그녀가 전하지 못한 것을 전달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날 집에 돌아간 후로 다음 만남 이전에 그녀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받자 그녀는 대뜸 ”제가 오늘 자신을 보며 너무 놀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번에 장애 심사승인에서 탈락했다고 그녀가 이야기했을 때 제가 경증 장애인 신청을 알아보자고 했는데 그녀가 이번 외래에서 그 생각이 났던 모양입니다. 그녀가 먼저 주치의에게 장애 진단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는 그걸 생각해내고 또 말해낸 자신에게 화들짝 놀란 모양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주치의에게 신청이 될 것 같다는 답변도 받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기쁜 목소리에 저도 제 일처럼 함께 기뻤습니다.

10회기

10회기 방문하여 그녀를 마주하자 그녀의 행색과 안색이 달랐습니다. 저에게 주겠다며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참외를 깎기도 했고 밥을 먹자고 반찬을 꺼내 차리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저를 놀라게 한 변화는 그녀가 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 기관 직원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외롭고 힘들면서도 우울증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고 싫었기에 혼자 있고 싶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저를 만나기전에 제가 말도 잘하고 재밌는 사람일거라고 들었다며 첫 만남 이전을 회상하기도 했고 그동안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 말을 다 듣고 있었다며 그만두지 말고 오래 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20년 전 집을 나온 동기가 남편의 외도였다는 것과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에 대해서도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자해했던 그녀의 마음을 이야기를 통해 느꼈고 저에게 이런 말을 꺼내준 그녀에게 크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때까지 자신이 겪은 일과 심정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늘 끝나고 후회가 됐다고 했습니다.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나왔다는 직원들과 대화하고 나면 자신의 말을 이해해주는 느낌을 받지 못했고 생활도 이전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이 닫혀있었기에 2달 이상 그녀는 저를 지켜보기만 했던 겁니다. 두 달이 지나자 그녀는 저와 이야기가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가 치부라고 생각했던 남편의 외도와 정신과입원, 자해와 자살시도 경험 등을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10회기 이후 그녀가 저를 신뢰하게 되며 처음 듣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지금의 고민을 나누고 싶어 했고 산책하며 이야기를 하자고 권했습니다. 또 장애진단 신청을 하려면 필요한 구비 서류 등을 챙겨 줄 때에 고맙다 진정성 있는 말을 들음.

그녀를 만나서 활동을 하다보면 다음회기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게 비껴 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막상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음 할 일이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면 필요했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 두었다가 급한 것 순서대로 꺼내어 보고는 합니다. 회기 때마다 그녀에게 새로운 욕구가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변하지 않는 삶의 목표는 그녀에게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욕구들 예를 들면 따뜻한 밥을 먹거나 누군가와 전자제품 매장을 둘러보는 것의 충족을 통해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저 조차 이게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는 채로 계획을 세우거나 함께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의논하여 함께 계획을 수립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녀와 하나씩 해나가는 데에는 당사자로서의 저의 삶과 오랜 직장 생활의 경험, 아이를 키운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했던 고민과 닮은 고민을 마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들의 고민에 저 조차도 대답을 찾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저는 더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해결은 그녀가 하더라도 제가 조금 더 많은 걸 알고 있고 전하고 싶다는 자기개발의 필요성도 느낍니다.

활동을 하며 어려운 것이 있다면 참고 자료는 없고 그녀들마다의 변수는 너무 많은 것입니다. 저는 그게 이 일의 어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의 질이 낮은 것은 전반적으로 그녀들이 가진 어려움이었지만 함께 해결해야 할 부분은 각자 달랐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저 또한 이런 한계에 직면 할 때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이 만남이 그녀가 접한 다른 만남과 다른 건 가사관리사분과 제가 동행하는 데에 있습니다. 병원 동행 등을 하면서 동시에 살림을 도우려면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기본적인 욕구를 가사관리사가 도와드리는 동안 저는 그녀와 같이 해나갈 것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면 두 시간씩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시간이 그녀와 나 사이 신뢰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센터를 십 년 이상 다녔으나 회복되는 것은 고사하고 하소연 한번하기도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외래 등 약물 복용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그녀가 겪는 어려운 점을 이야기해도 조사만 해가고 후 조치는 전혀 함께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간 낮 병동 등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은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또 얼마나 오다가 말지 모른다는 의심과 이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도울지에 대한 불신이 생겨 돕겠다는 누군가가 와도 의심의 벽과 경계가 그녀와 타인 사이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전까지 많이 받았지만 저와의 만남은 다른 서비스들과 다르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다른 이들도 이런 해택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의 문을 닫고 살며 이렇게 까지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한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녀를 도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증상에 대해 묻기만 했습니다. 센터나 복지관에서 오는 사람은 대게 어리고 그녀와 같은 삶의 경험도 없었기에 증상에 대해 말하는 이런 대화가 그녀는 부담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고 또 다른 담당자로 바뀌었고 진정성 있게 기댈 사람은 없었습니다.

알지만 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아주 사소한 일상들 양치하나 하는 것조차 매일같이 해야지 하면서도 무기력으로 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 서비스는 무엇을 해야 할지 항목을 정하고는 하고 있는지 못하는지를 체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양치질 할 기력이 생길 때가 되면 누구나 양치를 하고자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최종적으로 그녀들의 삶이 고립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녀들의 환경은 열악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다하더라도, 그녀가 정서적으로 조차 늘 외롭고 믿고 말할이가 없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고립상태의 그녀들에게 저의 진정성이 닿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녀들에게 보내는 지지와 격려가 그녀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 일조하기를 기대 합니다.

그녀들을 만나며 보람될 때도 힘들 때도 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또 계속 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그녀들로 부터 저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녀들과 함께하다 보면 그녀들안에 있는 회복하고 싶다는 소망이 보입니다. 나 역시도 샴푸를 짜는 것, 손톱을 깎는 것조차 하기 어려웠던 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녀들의 긴 시간에는 그녀 혼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혼자 긴 시간 무기력 속에 있다 보면 만성화되어 때를 놓칠지 모릅니다. 그녀들이 더 이상 힘들어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라도 저는 제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집을 나서고 있습니다.

서비스 참여자 수기

저는 독립생활을 한지 5년된 정신재활시설 태화해뜨는샘의 회원입니다. 제가 이 주택코디네이터 서비스를 받고자 했던 이유는 정신장애인의 경우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지역사회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이 서비스를 받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첫달이라 많은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한달동안 받아 본 결과, 같은 당사자로서 나의 어려움에 귀 기울여 주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해해 주는 모습이 제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반적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의 느낌이 아니라 친밀하고 인간적인 느낌, 그리고 새로운 관계속에서 받게 되는 활기찬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기주장이 부족해 늘 손해만 보고 생활 속에서 작은 목표가 필요한데 명확히 실천하지 못하는 저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조력자... 내 증상을 살펴주는 든든한 친구...내편이 생긴거 같아 참 다행이고 좋습니다. 주택코디네이터는 제 삶에 안정감을 주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서비스는 저같은 독립생활을 하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인 것 같습니다.







문의사항

태화해뜨는샘 주거복지사업 담당자 : 김준호 사회복지사, 이지은 사회복지사

                                     02-2040-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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